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였던 '현기증 (Vertigo, 1958)'의 다음 영화로, 영화의 이야기에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도 없는,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을 다 본 건 아니지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그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의 대표작들 - '현기증', '싸이코 (Psycho, 1960)', '이창 (Rear Window, 195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중에서는 확실히 가장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영화이다.

어니스트 레흐먼이 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각본은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긴 해도 굉장히 재미있다. 유능한 광고업자 로저 O. 쏜힐(Cary Grant)은 자신을 조지 캐플란이라고 오해한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납치를 당해 타운젠드 저택으로 끌려오게 된다. 저택의 주인이라 여겨지는 타운젠드는 쏜힐이 조지 캐플란이라고 굳게 믿고 쏜힐을 죽이려 한다. 쏜힐은 가까스로 죽을 위기를 넘기지만 계속해서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UN 본부에 있다는 타운젠드를 만나기 위해 UN 본부로 간 쏜힐은 그곳에서 진짜 타운젠드(Philip Ober)를 만나게 되고, 타운젠드 저택에서 자신을 죽이려 한 자는 타운젠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구나 진짜 타운젠드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는 바람에 살인범 누명까지 쓰게 된 쏜힐은 이제는 경찰로부터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쏜힐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의 정체도 밝혀내고, 살인범 누명도 벗기 위해 조지 캐플란이라는 자를 추적한다. 쏜힐은 조지 캐플란이라는 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금발의 미녀 이브 켄덜(Eva Marie Saint)을 만나게 되고, 타운젠드 행세를 한 필립 밴담(James Mason)이라는 자도 다시 만나게 된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는 할리우드 영화사에서도 유명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UN 본부의 내부를 보여주는 장면 - 당시에는 UN 본부의 내부와 외부에서의 영화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었는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보여주는 UN 본부의 내부는 UN 본부의 실제 내부를 스케치하여 똑같이 만든 세트이며, 쏜힐이 택시에서 내려 UN 본부로 들어가는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카메라를 숨겨 몰래 촬영한 것이다 - 과, 쏜힐이 옥수수밭이 있는 넓은 벌판에서 경비행기의 공격을 받는 장면, 그리고 역대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 산에서의 추격 장면은 유명하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어니스트 레흐먼의 재미있는 각본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재기 넘치는 연출력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면 결코 짜임새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화의 이야기에 의문이 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허점들이 너무 많고, 이야기는 다소 산만하다. 이는 어니스트 레흐먼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먼저 생각해 둔 여러 재미있는 장면들과 상황들을 기초로 해서 각본을 썼기 때문이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보면 마치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 놓은 듯하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재미있고 긴장감이 넘치는 다음 장면을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야기의 장소와 상황을 계속 바꾸는 것으로 이야기의 재미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원제목은 'North by Northwest'인데, 원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는 "north by northwest"가 "북북서"로 번역이 되었지만, "north by northwest"는 "북북서"에 대한 일반적인 영어 표현은 아니다. "북북서"의 일반적인 영어 표현은 "north-northwest"이다. 영화를 보면 노스웨스트(Northwest) 항공사가 나오는데, "north by northwest"는 "북북서"보다는 노스웨스트를 타고 북쪽으로 간다는 해석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쏜힐은 위험에 빠진 이브를 구하기 위해 시카고에서 노스웨스트를 타고 사우스 다코타주의 래피드 시티로 가는데, 하지만 래피드 시티는 시카고의 북쪽에 위치해 있지 않다. 래피드 시티는 시카고의 서북서에 위치해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Hamlet)'에서 햄릿의 대사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영화의 이야기에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도 없는,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에 굳이 제목의 의미를 따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시카고로 가는 기차의 식당칸에서 쏜힐과 마주 앉은 이브가 쏜힐에게 로저 O. 쏜힐의 "O"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쏜힐이 대답한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마지막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장난기 가득한 연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영화의 흐름을 끊어 놓아 결코 재기 넘치는 연출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쏜힐이 러시모어 산의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이브의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절체절명의 장면에서 쏜힐이 갑자기 이브를 쏜힐 부인이라고 부르면서 이브를 침대칸의 침대 위로 들어올리는 장면으로 바뀐다. 그리고 쏜힐과 이브가 키스를 하면서 장면은 기차가 굴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바뀐다. 영화의 이야기에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도 없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이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응큼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에서 40위를, 새로이 선정한 2007년 10주년 기념판에서는 55위를 차지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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