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2012)

영화 2012. 6. 19. 03:34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

건축학과 1학년생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배수지)에게 반한다. 승민과 같은 동네에서 사는 서연은 승민에게 건축학개론 수업의 숙제를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한다. 승민과 서연은 건축학개론 수업의 숙제를 같이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 가고, 결국 승민은 제주도에서 온 풋풋한 서연을 남몰래 좋아하게 된다.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 앞에 대학교 1학년 때 첫사랑이었던 서연(한가인)이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다. 서연은 승민에게 제주도에 있는 자신의 옛 집을 다시 지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건축가와 건축주로 다시 만난 승민과 서연은 집을 지으면서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아 가고, 승민은 자신의 마음 속에 서연에 대한 15년 전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건축학개론'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툰 순진한 승민이 서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오해로 인해 서연과 멀어지게 된 과거의 이야기와, 15년 만에 다시 만난 승민과 서연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쌓아 가는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으로 나란히 전개되는 영화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승민과 서연이 옛 추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이야기는 승민과 서연이 과거에 확인하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다시 확인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 있는 서연의 집이 완성되어 가면서 승민과 서연의 완성되지 못했던 첫사랑의 이야기도 15년 만에 완성되어 간다.

'건축학개론'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이용주 감독은 영화에서의 승민처럼 실제로 건축공학과 출신이다. 어떤 사람의 집을 가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듯 집을 지으면서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멜로의 구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이용주 감독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건축과 첫사랑을 '건축학개론'에서 절묘하게 접목시켜 놓았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과 서연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주는 승민과 승민모(김동주)의, 그리고 서연과 서연부(이승호)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건축학개론'이 들려주는 첫사랑의 이야기가 영화 속 승민과 서연만의 첫사랑이 아닌, 관객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인 첫사랑의 이야기가 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승민에게 연애에 대해 조언(?)을 해 주는 승민의 친구 납뜩이(조정석)는 영화에 웃음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공평하게 전개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건축학개론'이 첫사랑에 관한, 첫사랑의 추억에 관한 영화이다 보니 자연히 현재의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이야기에, 현재의 승민과 서연보다는 과거의 승민과 서연에게 관심이 쏠리게 된다. '건축학개론'의 실질적인 영화의 주인공인 과거 승민 역의 이제훈은 첫사랑에 빠진 순수한 대학 1학년생의 감성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으며, 풋풋한 과거 서연 역의 배수지도 풋풋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현재 승민 역의 엄태웅과 현재 서연 역의 한가인은 좀 실망스러웠는데, 엄태웅과 한가인이 이제훈이 연기하는 승민과 배수지가 연기하는 서연을 좀더 관찰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이것이 첫사랑에 관한 영화인 '건축학개론'이 흥행에서 성공한 이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영화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영화에 몰입했을 것이다. 난 특히나 더 그랬는데 나와 같은 세대인 승민의 캐릭터가 나와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승민의 행동을 소심하고 비겁하다고 욕을 하는데, 나도 대학생 때 첫사랑이었던 그녀에게 그렇게 행동했다. 오해를 풀고 싶어 나에게 여러 번 접근한 그녀에게 승민처럼 이제 좀 꺼져 줄래라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냉정하게 돌아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미안하기도 하고, 참 부끄럽기도 하다.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첫사랑, 나의 썅년의 기억이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다시 떠오른다. 첫사랑의 추억은 오래됐어도 여전히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현재 승민이 엄마에게 이 집이 지겹지도 않냐고 묻자 엄마가 대답한다. "집이 지겨운 게 어딨어, 그냥 집은 그냥 집이지."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녀도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잠시라도 내 기억을 떠올릴까 생각하면 또 설렌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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