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냉전 시대에 "상호 확증 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라는 군사적 핵 전략이 실제로 미국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 상호 확증 파괴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종말 병기(Doomsday Machine)"라는 가상의 장치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상호 확증 파괴는 적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으면 종말 병기가 자동으로 작동되어 적에게 핵공격을 가함으로서 모두를 파멸로 몰아간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상호 확증 파괴는 상호 파멸을 막기 위하여 서로가 전쟁을 피하게 되는, 즉 핵이 오히려 전쟁을 억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원리이다. 그러면 만약에 종말 병기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어느 미친 놈이 종말 병기를 작동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상호 확증 파괴와, 당시의 미소 냉전을 풍자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블랙 코미디는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통렬하게 풍자하는 희극이다. 난 아직까지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보다 웃기면서 현실을 이토록 날카롭게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세상에 핵무기가 없어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이야기가 더 이상 적용이 되지 않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블랙 코미디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로서 계속 명화로 남아있을 명화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인의 "소중한 체액"을 오염시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망상 - 당시 극단적 반공주의에 빠진 미국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 에 사로잡힌 버펠슨 공군 기지의 미치광이 사령관, 잭 리퍼 장군(Sterling Hayden)은 소련에 대한 핵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에 핵폭탄이 탑재된 34대의 B-52 폭격기들이 일제히 소련을 향한다.

머킨 머플리 미국 대통령(Peter Sellers)은 펜타곤의 전쟁 상황실에서 벅 터지슨 장군(George C. Scott)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는다. 터지슨 장군에 의하면, 리퍼 장군이 B-52 폭격기들에 내린 소련에 대한 핵공격 명령을 취소시키려면 암호가 필요하며, 암호는 오직 리퍼 장군만이 알고 있는데 현재 버펠슨 공군 기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드 새디스키 소련 대사(Peter Bull)와 미치광이 독일계 과학자 스트레인지러브 박사(Peter Sellers)로부터 종말 병기에 대한 무서운 비밀을 듣게 된다. 겁에 질린 머플리 대통령은 리퍼 장군과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즉각 버펠슨 공군 기지에 군을 투입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디미트리 소련 서기장에게 전화를 걸어 핵폭탄을 탑재한 B-52 폭격기들이 소련을 향해 날아가고 있으니 B-52 폭격기들을 격추시켜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한편, 리퍼 장군에 의해 리퍼 장군의 사무실에 갇힌 리퍼 장군의 부관, 라이오넬 맨드레이크 영국 공군 대위(Peter Sellers)는 암호를 알려달라고 리퍼 장군을 설득한다. 그러나 리퍼 장군은 버펠슨 공군 기지가 대통령의 명령으로 투입된 군에 넘어가게 되자 자살하고 만다.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

(여러분, 여기서 싸우면 안돼요! 여긴 전쟁 상황실이란 말이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이야기의 스케일에 비해 굉장히 검소(?)한 영화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 무대는 리퍼 장군의 좁은 사무실과, T. J. "킹" 콩 소령(Slim Pickens)이 모는 B-52 폭격기의 좁은 조종실, 그리고 펜타곤의 전쟁 상황실, 세 곳인데, 리퍼 장군의 사무실은 너무나 평범한 사무실로 세팅을 했으며, 전쟁 상황실에 세팅된 대형 상황판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 그러나 전쟁 상황실의 대형 원형 탁자와 B-52 폭격기 조종실의 계기판은 꽤 인상적이다. 그리고 영화 중간 중간에 보여 주는 소련을 향해 날아가는 콩 소령의 B-52 폭격기도 모형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날 정도로 조잡하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수에 비해 배우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피터 셀러스가 세 캐릭터 - 맨드레이크 대위, 머플리 미국 대통령, 그리고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 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원래 콩 소령도 피터 셀러스의 역이었으나 텍사스 억양을 구사해야 하는 어려움으로 결국 콩 소령 역은 슬림 피켄스가 맡게 된다. 다소 조잡한 세팅과 피터 셀러스의 세 캐릭터 연기는 오히려 코미디 영화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는 더 큰 웃음을 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엉뚱하고 기이하다. 하지만 배우들은 굉장히 절제된 연기를 보여 주고 있는데, 엉뚱하고 기이한 캐릭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오히려 더 큰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세 캐릭터를 연기한 피터 셀러스도 훌륭하지만, 터지슨 장군 역의 조지 C. 스캇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다. 특히 그의 웃기는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인상 - 조지 C. 스캇이 패튼(George C. Scott)으로 나오는 '패튼 대전차 군단 (Patton, 1970)'에서의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다 - 을 가진 조지 C. 스캇이기에 그의 웃기는 표정 연기는 더 큰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야단맞고 뾰로통해 있는 얼굴 표정이나, 전쟁 상황실로 걸려온 미스 스캇(Tracy Reed) - 미스 스캇 역의 트레이시 리드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나오는 유일한 여자 배우로, 영화의 초반부에서 콩 소령이 보는 플레이보이 잡지 속의 여자 모델도 트레이시 리드이다 - 의 전화를 끊고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표정은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암호를 알아낸 맨드레이크 대위는 공중 전화로 대통령에게 암호를 가르쳐 주고, 다행히 소련에 대한 핵공격 명령은 취소된다. 하지만 통신기기의 고장으로 소련에 대한 핵공격 명령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지 못한 콩 소령은 소련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만다.

이제 곧 소련의 종말 병기가 작동되어 인류를 파멸시킬 핵폭탄들이 터지게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대통령에게 방사능이 도달할 수 없는 땅 속 깊은 곳에 수직 갱도를 만들어 선택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적당한 번식 기술과 남자 한명에 여자 10명이면 20년 안에 인류는 현재의 수준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터지슨 장군은 남자 한명에 여자 10명이라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계획에 큰 관심을 보인다. 또한 터지슨 장군은 미국이 번식을 위한 수직 갱도의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소련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사이 드 새디스키 대사는 숨겨온 소형 카메라로 몰래 전쟁 상황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소련의 핵폭탄들이 터지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소련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터지슨 장군과 전쟁 상황실의 정보를 빼내려는 드 새디스키 대사를 통해 당시의 미소 냉전을 풍자하고 있다. 터지슨 장군이 수직 갱도의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다분히 여자를 밝히는 터지슨 장군의 성적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 터지슨 장군이 수직 갱도의 공간 확보를 주장하면서 소련에게 "수직 갱도 격차(mine shaft gap)"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미소 냉전 시대에 미국이 미사일 개발에서 소련에 뒤지고 있지 않나 하는 위기감에서 나온 "미사일 격차(missile gap)" 논쟁을 풍자하고 있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대통령에게 궤변을 늘어놓는 중에 검은 장갑을 낀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오른손이 제멋대로 나치식 경례를 하기도 하고,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핵폭탄을 개발한 과학자들에 대한 조롱과 원망이 섞여 있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서더니 자신이 두 발로 선 것에 기뻐한다. 핵폭탄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인류의 파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결국 소련의 종말 병기의 작동으로 핵폭탄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핵폭탄들이 터지는 장면과 함께, 베라 린의 노래, 'We'll Meet Again (우리 다시 만날거예요)'이 핵폭탄들이 터지게 된 상황을 빈정대듯 울려 퍼진다. 'We'll Meet Again'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발표되기 훨씬 이전인 1939년에 발표된 노래인데,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사용된 이후부터는 베라 린의 목소리와 함께 나오는 남성 합창단의 목소리가 굉장히 빈정대는 듯 들린다.

"We'll meet again, don't know where, don't know when,

but I know we'll meet again, some sunny day."

(우리 다시 만날거예요, 어디서 언제일지는 몰라도,

어느 화창한 날에 우리 다시 만날 거란 걸 난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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