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16번째 연출 작품으로, 이 작품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비로소 진정한 영화감독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에도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2003)',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2004)',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와 같은 걸작들을 계속해서 연출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 이전에는 - 물론 이미 15개의 영화를 연출하기는 했지만 - 영화감독보다는 영화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 -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1964)', '석양의 건맨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 에서의 "이름 없는 자"(Clint Eastwood)와, 더티 해리 시리즈 - '더티 해리 (Dirty Harry, 1971)', '더티 해리 2 - 이것이 법이다 (Magnum Force, 1973)', '더티 해리 3 - 집행자 (The Enforcer, 1976)', '더티 해리 4 - 써든 임팩트 (Sudden Impact, 1983)', '더티 해리 5 - 추적자 (The Dead Pool, 1988)' - 에서의 해리 캘러한(Clint Eastwood)을 통해, 미국 남성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표정의 연기는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은 그의 무표정의 연기는, 어찌 보면 굉장히 무미 건조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표정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 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담아낼 수 있는, 심지어는 깊이까지 느껴지기도 하는 매력이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용서받지 못한 자'와 이후의 그의 영화들을 보면, 영화의 스타일이 그의 연기 스타일과 비슷하다. 그의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화려한 특수효과나, 세련된 화면의 전개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가 "이름 없는 자"와 해리 캘러한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무표정의 연기만큼이나 무미 건조하다. 그러나 깊이가 느껴진다. 심오하고, 조금은 철학적이기까지 한 주제들이 영화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악명 높았던 잔혹한 살인자였지만, 착한 아내를 만나 새사람이 된 빌 머니(Clint Eastwood)는 지금은 아내를 여의고 두 어린 자식들과 함께 돼지를 기르며 어렵게 살고 있다. 어느날 총잡이로 보이는 스코필드 키드(Jaimz Woolvett)라는 젊은이가 빌 머니를 찾아와 천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 두 사내를 죽이고 현상금을 나누자는 제안을 한다. 현상금이 걸려 있는 두 사내는 자신들을 향해 웃었다는 이유로 한 창녀의 얼굴을 난도질하는 폭력을 휘둘렀으나, 마을의 부패한 보안관 리틀 빌 대거트(Gene Hackman)는 두 사내에게 가벼운 벌금형만 내리고 풀어준다. 이에 분개한 창녀들이 두 사내를 죽이는데 현상금을 내걸었던 것이다. 돈이 필요한 빌 머니는 오랜 친구인 네드 로건(Morgan Freeman)과 함께 스코필드 키드를 따라 나선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영화의 주제는 꽤 복잡한 영화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잘못된 미국식 영웅주의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조금은 철학적인 문제들도 제기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수정주의 서부 영화로서, 영웅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전통 서부 영화를 부정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서부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서부의 역사에 영웅이니 낭만이니 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도, 이름보다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거나, 이름이 거의 닉네임처럼 알려져 있는 미국의 전설적인 영웅들인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나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같은, 거창한 닉네임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모두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리틀 빌은 악당이나 다름없는 마을의 부패한 보안관일 뿐이고, 현상금을 위해 마을에 나타난 잉글리쉬 밥(Richard Harris)은 총 한번 쓰지 못하고 리틀 빌에게 얻어터져 마을에서 쫓겨난다. 스코필드 키드는 스코필드 키드라는 닉네임까지 자신이 직접 짓고 총잡이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총 한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애송이일 뿐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는 전통 서부 영화에서나 나오는, 영웅이 악당들을 멋있게 물리치고, 총잡이들이 서로 마주보고 총을 뽑는 낭만적인 결투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스코필드 키드는 현상금이 걸려 있는 두 사내 중 한명인 퀵 마이크(David Mucci)를 똥을 누고 있을 때 몰래 다가가 처참하게 사살하고, 빌 머니는 이미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리틀 빌을 잔인하게 확인 사살까지 한다. 또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사람이 악당이라 하더라도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빌 머니가 퀵 마이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스코필드 키드에게 말을 하듯,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그리고 가지게 될 모든 것들을 빼앗는 죄악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 영웅이니 낭만이니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 나오는 전기 작가, W.W. 보챔프(Saul Rubinek)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지어낸 것일 뿐이다. 따라서 빌리 더 키드나 제시 제임스 같은 이들도 단지 무법자들일 뿐, 결코 영웅들은 아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이들을 영웅화하는 미국의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마을의 보안관 리틀 빌을 통하여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리틀 빌은 창녀 딜라일라(Anna Levine)의 얼굴을 난도질한 두 사내, 퀵 마이크와 대비 번팅(Rob Campbell)에게 사유 재산을 훼손한 댓가로 포주인 스키니(Anthony James)에게 각각 말 다섯 필과 말 두 필로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처벌 없이 두 사내를 풀어준다. 정작 피해를 당한 딜라일라에 대한 보상과 보호는 없다. 리틀 빌에게는 창녀인 딜라일라는 단지 포주 스키니의 사유물일 뿐이다.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일 뿐, 사회적 약자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창녀들은 결국 현상금을 내걸고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무법자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현상금을 위해 마을에 나타난 잉글리쉬 밥과 빌 머니는,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는 리틀 빌에게는 단지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깨뜨리는 무법자들일 뿐이다. 결국 잉글리쉬 밥과 빌 머니는 리틀 빌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을에서 쫓겨난다. 심지어 네드 로건은 리틀 빌의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리틀 빌은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리틀 빌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는 평화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공권력을 정당화하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도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잘못된 미국식 영웅주의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표면적인 이야기와 함께, 그 이면에서는 조금은 철학적인 문제들도 제기한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잉글리쉬 밥은 세상 사람들에게 대단한 총잡이로 알려져 있었지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총 한번 쓰지 못하고 리틀 빌에게 얻어터져 마을에서 쫓겨난다. 빌 머니는 세상 사람들에게 잔혹한 살인자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들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빌 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잔혹한 살인자이지만 창녀들에게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영웅이다. 리틀 빌은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보안관이지만 창녀들에게는 악당이나 다름없다. 이를 통해 영웅과 악당, 선과 악,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과연 절대적인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빌 머니가 죽은 아내를 묻기 위해 무덤을 파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빌 머니가 살인자였던 과거의 자신을 묻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다시 살인자로 만들었다. 비록 마땅히 죽어야 할 악당들을 죽이긴 했지만, 사람을 죽인 행동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마지막 장면은 집으로 돌아온 빌 머니가 아내의 무덤 앞에 서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죽은 아내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자는 결국 아내의 무덤 곁을 떠났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출연진과 스태프들을 알리는 마지막 자막 뒤에, 자신의 영화 인생에 큰 영향을 준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더티 해리'의 돈 시겔 감독에게 영화를 바친다는 말로 두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돈 시겔 감독 역시 자신의 제자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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