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Rebecca, 1940)

영화 2009. 11. 23. 17:43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제작자 데이빗 오 셀즈닉은 그 다음해에는 영국에서 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손을 잡고 제작한 '레베카'로 또다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 2년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 첫번째 제작자로 미국 영화사에 기록되는 영광을 차지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레베카' 이후에도 '이창 (Rear Window, 1954)', '현기증 (Vertigo, 1958)', '싸이코 (Psycho, 1960)' 등과 같은 미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지만, 정작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는 미국으로 건너와 만든 첫번째 영화 '레베카'가 유일하다 -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명성에 비해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이 없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자신의 이름으로 -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다섯 번 오르기는 했지만 - 아카데미상을 수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두번째 영화 '해외 특파원 (Foreign Correspondent, 1940)'도 '레베카'와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카데미 작품상은 '레베카'에게 주어졌다.

다프네 두 모리에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레베카'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답게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다. 한 여인의 꿈에 나타난 대저택 "맨들리"의 허물어진 모습을 보여 주는 화면과 함께 이 여인의 회상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하고 순수한 젊은 여성(Joan Fontaine) - 영화 내내 이 여성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 은 프랑스 남부 몬테 카를로에서 우연히 만난 부유한 신사 맥시밀리언 드 윈터(Lawrence Olivier)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맥심은 그의 기억 속에 사고로 죽은 첫번째 드 윈터 부인 레베카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 슬퍼 보이고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 보인다. 결혼식을 마치고 맥심의 저택 "맨들리"에 온 두번째 드 윈터 부인은 맥심뿐만이 아니라 맨들리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레베카의 흔적들을 느끼게 된다. 맨들리의 하인들은 두번째 드 윈터 부인을 맨들리의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맨들리의 곳곳에는 레베카의 이니셜 "R"이 찍힌 레베카의 물건들이 마치 맨들리에 레베카가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는 가정부 댄버스 부인(Judith Anderson)의, 레베카의 망령에 사로잡힌 듯한 레베카에 대한 무서운 집착은 드 윈터 부인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리고 맥심이 부재중일 때 댄버스 부인을 만나러 맨들리에 온 레베카의 사촌 잭 파벨(George Sanders)이라는 인물도 드 윈터 부인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사고로 바다에 가라앉은 레베카의 배와 레베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레베카와 맥심, 그리고 맨들리에 숨겨져 있던 무서운 비밀들이 하나 하나 드러나기 시작한다.

'레베카'는 미스터리한 영화의 이야기만큼이나 전반적으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연출력으로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는 인물인 레베카를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들보다도 더 존재감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마치 레베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듯한 분위기를 관객들이 계속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데, 특히 맥심이 자기 부인에게 레베카가 죽게 되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마치 레베카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화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레베카의 유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끔 하고 있다. 또한 레베카와 그녀의 사촌 잭과의 이상한 관계가 주는 근친 상간의 암시와,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집착이 주는 동성애의 암시는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 다프네 두 모리에르의 소설에서는 댄버스 부인을 비교적 나이가 든 인물로 설정을 하여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집착을 어머니의 딸에 대한 집착 비슷하게 묘사해 놓았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댄버스 부인을 소설에서보다는 좀더 젊은 여인으로 설정하여 동성애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좀더 기괴한 인물로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레베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맥심은 비록 댄버스 부인에 의해 맨들리를 잃기는 하지만 결국 레베카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 부인과의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영화가 끝나지만 관객들을 기묘한 분위기에서 계속 빠져있게 만드는 '레베카'는 영화의 이야기에서 오는 기묘한 분위기만큼이나 영화 자체 또한 기묘한 영화이다.

사실 '레베카'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는 결코 아니다. '레베카'가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찰리 채플린 감독의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1940)', 조지 쿠커 감독의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1940)'와 같은 보다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작품들을 물리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그 당시 제작자 데이빗 오 셀즈닉의 파워가 할리우드에서 얼마나 셌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Posted by unforgettable
,